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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4-04 16:34
시간이라는 찻잔에 세월을 우려내다 - 인경스님
 글쓴이 : 공덕원
조회 : 3,087  
“시간이라는 찻잔에 세월을 우려내다”
 
                                                            - 인경(仁鏡) / 지장불교대학 지도법사
 
 
얼마 전,
오랜만에 통도사에 내려가 도반스님을 만났다.
그 스님은 이미 출가하기 전부터 차(茶)에 대해 아주 해박했는데,
 
아직도 그 습(習)이 남아서인지
이번에는 아예 갖가지 차를 병풍처럼 쭉 둘러놓고 살고 있었다.
 
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의 시선이,
지난 시간을 거슬러 다시 눈앞의 찻잔 속으로 돌아올 때 쯤...
문득 무언가 생각났는지 휑하고 일어서서는 고이 싸놓은 한지 뭉치 하나를 들고 나왔다.
 
이미 낙엽처럼 변해버린 한지 속에는
묵은 보이차(普耳茶) 한 덩이가 조심스레 살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일부라도 되는 양 애지중지하며 그 내력을 장황히 설명하는데,
보이차(普耳茶)의 인생인지, 도반스님의 인생인지 도대체 분간할 수 없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려는 찰나,
나에게 말빚을 졌다며 50여년 정도 숙성된 그 보이(普耳) 한 조각을 나눠주기에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들고는 되돌아 왔다.
 
어느 날,
『열반경』을 읽고 있던 차에 도반스님이 쥐어 준 보이가 생각나서
차편(茶片) 한 켠을 조금 떼어내어 다관(茶罐)에 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화로에 물이 끓기에 천천히 찻물을 붓고,
차에 물이 스며들기를 기다렸다.
기다림은 곧 설레임으로 바뀐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섭보살(迦葉菩薩)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善男子)야, 새에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이름이 가린제(迦隣提)요, 다른 하나는 이름이 원앙(鴛鴦)이다. 놀고 머무는 것을 함께 하면서 서로 떠나지 아니한다.
괴로움(苦)과 무상(無常)과 무아(無我) 등의 법(法)도 역시 그러하여 서로 떠나지 않는다.”
 
경전을 읽는 사이,
어느 덧 다관은 찻잎으로 그득해졌다.
보이의 첫 잔을 따라 버리고, 다시 다관에 물을 한껏 채웠다.
 
…… 가섭보살(迦葉菩薩)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괴로움(苦)과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법(法)이 저 원앙((鴛鴦)과 가린제(迦隣提) 같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善男子)야, 괴로움(苦)과 즐거움(樂)은 서로 다른 법(法)이다. 항상함(常)과 무상함(無常)도 서로 다른 법(法)이다. 자아(自我)와 무아(無我)도 서로 다른 법(法)이다. 비유하면, 벼가 삼(삼)이나 보리와 다르고 삼과 보리는 또한 콩, 조, 감자와 다른 것과 같다. 그러한 여러 종류가 싹·꽃·잎에 이르기까지
모두 무상(無常)하지만, 열매가 익어 사람이사용할 때에는 이름 하여 항상(常) 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성품이 진실한 까닭이라.
 
결 고운 찻물이
숙우(熟盂) 속을 휘감아 도는 모습만큼 신비한 일이 또 있을까!
 
이 순간은
단순히 차를 우려내는 과정을 뛰어넘어
반백 년 세월 기나긴 봉인이 풀리는 마법 같은 시간이 된다.
 
세월 머금은 보이(普耳)는 곧, 기다림의 찻잔에 녹아들고,
차를 마시는 것은 곧, 세월을 마시는 것이 되며,
세월은 다시 영원의 현실로 거듭난다...
 
“선남자야 금광석이 녹을 때 그것은 무상(無常)한 것이지만, 다 녹은 뒤에 순금이 되면 이익 됨이 많기에 항상(常) 하다고 하는 것이니라.”
-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8, 「여래성품(如來性品)」 中 -
 
사람은 마치 이 ‘보이차’를 닮았다.
차를 모르는 사람이 보이를 대하면 말라버린 지초(芝草)로 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세월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다구를 데워 진한 향기를 우려낼 줄 안다.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 그저 평범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 속엔 억겁의 시간을 지내온 세월의 맛이 담겨있는 법이다.
 
맛이 ‘맛’으로서 의미를 지닐 수 없다면 결코 맛이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상하게 피고 지는 무명초(無名草)와 다름없게 된다.
그러나 이 ‘맛’이 자기 자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의미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을 일러 ‘멋’이라고 하고 다른 말로 ‘꽃(華)’이라고 하기도 한다.
수많은 자기 내면의 꽃들이 모이면 ‘빛(華)’으로서 피어난다.
 
그런 까닭에 밝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각기 다 빛을 지니고 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어느 노래가사처럼
우리는 도반으로서 서로에게 하나의 빛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불자들의 법명에 ‘화(華)’라는 글자를 붙이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세상 두두 만물이 모두 그 실체가 없다하지만,
색깔을 더하면 더할수록 어두워지고 빛깔은 합하면 합할수록 밝아진다고 했듯이,
일체가 다 영원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너와 나의 우주가 함께 빛을 발하고
빛 속에서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를 꽃피워 냄은 결코 무상하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옷깃 한 번 스친 인연을 오백 생(生)의 인연이라 하고,
스승과 제자 됨은 일만 생(生)을 서로 만난 인연이 있어야 된다고 했다.
두 사람 사이에도 이처럼 지중한 인연이 있을진대,
지금 우리가 같은 시공간 속에서 함께 눈빛을 나누고 웃음꽃 만발할 수 있는 인연은
가히 그 수효를 헤아리기 어려우리라.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함께하는 이 순간은 결코 다시 만나거나 되 돌이킬 수 없으며,
억겁의 시간과도 맞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일기일회(一期一會)의 시절인연인 것이다.
 
지금 글을 보는 이 순간...
무변광대한 시공의 격자점(格子點) 한 가운데에서
다시 그 누구에게 ‘빛(華)’이 될 수 있을지 돌이켜 보라!
 
이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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